[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골목 이야기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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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골목 이야기 4-3
  • 김선옥
  • 승인 2022.06.24 06:34
  • 기사수정 2022-06-30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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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자료사진)

(…4-2에 이어)

골목에 잇닿은 건물은 동의보감 한의원이었다. 온 나라의 국민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 놓은 '허준' 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시청률 오십 몇 프로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막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건물주인 한의사는 드라마의 여세를 몰아 '동의보감 한의원'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개원에 박차를 가했다. 삼 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친 건물은 산뜻하게 바뀌어 이제 막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제법 큰 페인트 가게를 운영했던 전 소유자는 돈을 벌자 욕심이 생겨 건설 회사를 차렸고, 경기가 힘든 시기에 설립된 회사는 버티지 못해 부도가 났다. 신용금고의 담보로 들어간 건물은 경매에 붙여져 한의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한의사는 무도회장이었던 이층과 소극장이었던 삼층까지 말끔히 개조하여 커다란 물리치료실과 최신 장비를 들인 멋들어진 진찰실로 만들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여 손에 가득 돈을 움켜쥘 계획이었다.

골목 옆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을 지휘하던 현장감독이 망연한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였다.

그는 마지막 단계에서 엄청난 일을 목격하고 그만 맥이 풀렸다. 현장감독이 목격한 일이란 다름 아닌 화재였다. 몇 달 동안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만들던 화재가 골목에서 막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창문을 통해 먹물처럼 시커먼 연기가 품어져 나오고,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요란한 폭발음도 들렸다. 미친 불길은 혀를 날름거리며 춤을 추웠다. 쇠스랑처럼 생긴 지게차가 골목집의 쇠창살을 우악스럽게 뜯어내는 것과 동시에 역 쪽으로 연결된 도로에서 왱왱 소리를 지르며 소방차가 성난 황소처럼 황급히 달려왔다.

화재를 처음 목격하고 신고한 사람은 공사를 맡고 있던 젊은 현장감독인 그였다. 안경을 쓰고 키가 큰 그는 얼마간 얼이 나간 상태였다.

그는 공사가 거의 끝나간 마당에 불티가 날려 도색한 벽이 엉망이 될 것에 신경이 더 쓰였다. 심하게 불이 번지면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페인트에 섞인 신나가 인화작용을 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 하나 지나다니기도 빠듯한 골목길이어서 화재는 위험을 초래할 수가 있었으므로 그는 그것이 더 염려스럽고 두려웠다.

소방차는 도착하자마자 옆 건물에 물부터 뿌려대었다. 연이어 도착한 소방차들에서 노란 헬멧과 노란 장화를 착용하고 검은 옷을 입은 소방관들이 차례로 줄을 지어 내렸다. 그들은 즉시 사다리를 타고 창살이 뜯긴 창문을 통해 이층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사람이 있어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골목집 삼촌이라 불리는 총각이었다. 잘 생긴 그는 사색이 된 채 슬리퍼에 웃옷도 걸치지 않은 반바지차림으로 뛰쳐나왔다. 소리를 지르는 그에게 누군가 남방셔츠를 걸쳐주었다. 그는 자기의 벗은 몸에 누가 옷을 걸쳐 주는지도 모른 채 소방관들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이층에 아가씨들이 다섯이나 있어요. 제발 좀 구해 주세요.”

그는 손가락을 펴 보이며 여자들을 살려 달라고 말했다. 목이 메게 구걸하듯 부탁했지만 소방관은 무뚝뚝하게 고개만 저었다. 불길이 빠르게 번져 어렵다는 뜻인지, 구하려 노력하겠지만 가능성이 없다는 뜻인지 모호했다. 소방관을 붙잡고 늘어지던 그는 생각난 듯 누나에게 휴대 전화를 걸었다.

“누나! 애들이 다 죽은 거 같아. 모르겠어. 나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그는 전화기에 대고 애들이 다 죽은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이걸 어쩐다 몇이나 죽었어?"

떼로 몰려선 사람들이 황망한 낯빛으로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행인들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갔다.

"문을 다 잠갔다면서? 나쁜 놈들."

불티가 나르는 이층의 부서진 창으로 매캐한 연기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소방차들이 큰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불은 삽시간에 꺼졌다. 불이나고, 꺼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소방관들은 힘쓸 겨를조차 없었다. 진화는 간단했지만 인명 피해는 생각보다 컸다.

골목집 둘째 집의 여자들 다섯이 고스란히 떼죽음을 당했다. 여자들은 캐시미어 이불, 담요, 포대기에 덮여져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가려진 틈새에서 발목이 드러났다. 한쪽 발목에 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아직 광택이 사라지지 않은 반짝이는 십팔금이었다.

들것에 실린 여자들은 물건이나 다름없이 취급되었다.

여자들은 모두 시체였다. 시체들은 이리저리 부딪히고 아무렇게나 놓아도 아프다고 항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몸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할 아니, 말할 수 없는 시체였다.

하긴 살아 있을 때도 여러 남자들에게 함부로 취급되곤 했지만 말하지 못했다. 죽어서도 더 하면 더 했지 살아 있을 때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녀들은 시체가 되어, 소방서의 구급차에 실려 웅성거리는 무리들 속을 재빠르게 벗어났다.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을 하고 웅성웅성 모여든 사람들은 말에 꼬리를 붙이고 살을 더해 덩치를 키우게 될 것이었다.

소방차도 구급차도 사라지고 검게 그을린 창문만 보이는 건물 외에 볼거리들이 없어지자 몰려서 있던 군중들도아쉬운 듯이 하나 둘 흩어졌다.

노총각은 늦은 잠자리에서 깨어나 장사를 나가기 위해 준비하다가 골목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제일 먼저 여자의 안부가 궁금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과일과 꽃을 파는 친구에게 각기 전화를 걸었다. 과일 행상은 전화가 연결이 되지 않았고, 간신히 꽃 행상이 연결되었다.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골목·····…”

노총각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넘어왔다. 꽃행상도 노총각처럼 그런 모양이었다. 한동안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꽃행상은 골목집의 여자들 몇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 그의 단골들이었다. 노총각은 꽃 행상의 단골 여자들 중에서 죽은 여자들이 있는지, 그가 짝사랑했던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게 더 궁금했지만 어떻게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굉장했다더라."

"죽었어?"

“다섯 명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아직 확실한 것은 몰라. 오늘 그쪽으로 장사 나가긴 틀렸겠지? 두 번째 집에서 불이 나고, 그 집에 있던 여자들이 다 죽었다는 거 같던데 나가 봐야 알겠다."

꽃 행상이 말을 이었다. 그도 정확한 소식을 알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노총각의 심장은 두 번째라는 단어에서부터 멎었다가 이내 방망이질하며 뛰기 시작했다. 그가 짝사랑하던 여자는 두 번째 입에 소속되어 있었다.

"당연하지 임마. 나, 오늘은 장사 접을란다. 마음이 여간 싱숭생숭한게 아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지만 노총각은 빨리 집을 나가 소식을 수소문해야 할 것 같았다. 장사고 뭐고, 오늘은 아무것도 할 마음이 일지 않았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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